ISSUE CASE · 03
이슈 판례 <3>
밤 10시, 스마트키로 열린 사무실
스마트키가 있다고 해서 그 공간에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소유라고 적힌 장비를 ‘내 권리’라고 생각하고 옮겼을 때, 법원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2019년 2월 10일 밤 10시
사무실은 밤이 되면 낮과 다른 공간이 됩니다. 책상 위에 남은 키보드, 꺼진 모니터, 복도에 낮게 남은 조명, 닫힌 문. 낮에는 직원들의 목소리와 전화벨로 가득하던 공간도 밤 10시가 되면 기계의 미세한 소리만 남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2019년 2월 10일 22시경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회사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방법은 거칠지 않았습니다. 미리 가지고 있던 스마트키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더 묘합니다. 부서진 자물쇠도, 깨진 유리창도, 몰래 따낸 문도 아닙니다. 문은 열렸고, 피고인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본 핵심은 “어떻게 열었는가”가 아니라 “그 밤, 그 목적, 그 물건에 대해 권한이 있었는가”였습니다.
사라진 것은 작은 물건이 아니었다
사무실 안에는 고가의 전자제품들이 있었습니다. 판결문은 목록을 매우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피해 회사 소유의 MacBook Pro 21대, iMac 48대, iPad 57대, MacPro 7대, MacBook 4대, Apple 모니터 3대, 서버 2대, 키보드 10개, 마우스 15개, 아이폰 4대, 기타 전자제품 4개. 합계 약 1억 7,967만 원 상당이었습니다.
여기에 피해자 개인 소유의 노트북 2대, USB 1개, OTP 1개, 현금 300만 원도 포함되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장비 목록이지만, 실제 장면으로 상상하면 다릅니다. 책상과 선반에서 장비가 하나씩 빠져나가고, 사무실의 구조가 달라집니다. 모니터가 있던 자리는 비고, 서버가 있던 자리에는 케이블 흔적만 남았을 수 있습니다. 절도 사건에서 빈자리는 때로 물건보다 더 크게 보입니다.
“내 회사 물건이다”라는 주장
피고인은 단순히 남의 사무실에 들어가 훔쳤다고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피해 회사가 실질적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운영한 회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공소사실에 적힌 물품들은 타인의 소유·점유 재물이 아니라고 다투었습니다. 또 회사와의 분쟁 상황에서 상대방이 물품을 임의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소를 옮겨 보관한 것이라는 취지로도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한 번쯤 멈칫하게 만듭니다. 만약 정말 자기 회사라면, 만약 정말 자기 돈이 들어간 물건이라면, 밤에 가져간 행위가 모두 절도가 되는 것일까. 그래서 이 판례는 흥미롭습니다. 법원은 감정이나 자기 인식이 아니라, 법인과 소유, 대표권, 처분권의 경계를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법원이 본 회사의 주인
법원은 피해 회사가 피해자 공소외 2가 주주 겸 대표이사로 운영한 회사라고 보았습니다. 주주명부에는 회사 주식을 공소외 2가 모두 보유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으며, 피고인은 등기부상 임원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공소외 2가 사무실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피고인은 피해 회사 사무실에 거의 출근하지 않은 사실도 인정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주식 명의신탁이나 투자, 실제 운영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설령 피고인이 주식 명의신탁이나 채권 등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산 물품은 회사 소유이고, 주주나 채권자에 불과한 사람이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회사 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스마트키는 허락의 전부가 아니다
피고인이 스마트키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쟁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출입증이나 스마트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이 사건 같은 경우까지 사무실 출입이 허용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대표이사나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야간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가 물품을 꺼내 다른 장소로 옮겨두는 행위는 타인의 소유와 점유를 침탈한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이 대목은 일상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회사 출입카드가 있다고 해서 모든 시간, 모든 목적의 출입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사업, 투자, 지분, 채권 같은 복잡한 관계가 있더라도 물건을 가져가는 절차는 법이 정한 방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가 권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밤에 장비를 옮기는 순간, 민사 분쟁은 형사사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왜 징역 8개월이 선고됐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인을 야간건조물침입절도죄로 인정하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절취한 물품의 가액이 작지 않은 점,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점, 피고인이 선고기일에 불출석한 뒤 장기간 법원의 소환에 불응한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다만 피해 물품 대부분이 회복된 점, 동종 전과 및 집행유예 이상의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은 참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회사 장비 절도”가 아닙니다. 자기 권리라고 믿은 것과 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밤 10시, 스마트키로 열린 사무실 문은 조용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문을 지나 장비를 옮긴 행위는 법정에서 아주 긴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인가. 그 공간에 들어갈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분쟁이 있을 때 스스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허용되는가. 판결문은 그 질문에 단호하게 답합니다.